콰이어트
내성적인가, 내향적인가
어렸을 때는 내 성격이 내성적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어머니께서는 성격이 너무 내성적이니 좀 외향적으로 바꿔야한다고 하셨던 것 같고, 아버지께서는 사내 자식이 왜 그렇게 히매가리가 없냐고 종종 말씀하셨던 것 같다. 어머니는 심지어 좀더 못되 보이는게 낫다시며, — 그 때 우리 기준에서는 꽤 — 튀는 색인 주황색의 외투를 사주시기도 했다.
내 성격이 어땠기에?
내성적이라는 말을 듣는 사람의 성격이야 뻔하다.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은 몇몇 있지만, 반이 갈리면 굳이 다른 반으로까지 찾아가서 어울릴 생각은 하질 않는다. 자기주장을 강하게 내세우는 사람이 있으면 한두발 물러서는 편이었고, 책을 — 지금보다도 훨씬 더 — 즐겨 읽었다. 나이가 들면서 성격이 크게 바뀐 것은 아닌데, 그래도 사람을 대하는 것이 조금은 편해졌다는 생각을 때로 한다. 여전히 서툴긴 하지만, 상대방의 주장이나 태도가 내 입자에서 불공정하다 느끼면 나도 강하게 나설 때도 있다.
나 스스로도 어느정도 인정하는 바라서, 내성적이라는 것을 크게 부정하고 살지는 않았지만, 대학에 입학하거나 직장을 잡기 위해서 지원서를 낼 때는 문제가 좀 달랐다. 그런데다가는 내성적이라고 쓸 수 없으니까. 내성적이라는 말은 부정적인 단어다. 그렇다고 거짓말하고 싶은 생각도 없으니 내향적이라고 썼다. 내향적이라는 단어는 왠지 긍정적인 뉘앙스가 있어서 내 성격을 적당히 포장하기에 괜찮았다.
위로
내 성격을 _포장_할 단어를 찾았다는 것과 내 성격 그대로를 인정하고 _포용_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말이다. 나는 그 이후에도 여전히 내 성격을 좀더 외향적으로 바꾸기 위해서 노력해야한다고 생각했고, 그래도 어렸을 때에 비하면 많이 외향적으로 바껴보이는 것을 긍정적인 성취 중의 하나로 삼았다. 이런 식이다.
“제 성격이 조금 내향적이긴 한데요, 예전에 비하면 많이 활달해졌어요.”
활달하다는 게 뭔가 싶긴 하지만.
그러다가 Susan Cain의 The power of introverts(내향성의 힘)이라는 TED 강의를 들으면서, 내 성격이 잘못된 것이어서, 혹은 열등한 것이기 때문에 고치거나 바꿔야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냥 다른 것 뿐이다.
다른 사람들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힘을 얻을 때, 나는 조용히 책이나 읽으면서 에너지를 채워 나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사람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어울리는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저 많은 사람과 부대낄 때 좀더 빨리 지치긴 하지만, 필요하면 어느정도는 그 자리에서 에너지가 점점 차오르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일 수도 있을 거다.
꽤 오래전에 들었던 강의여서 이제는 큰 맥락 정도 밖에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느 정도는 나에게 위안이 되었던 강의이기도 했다. 당시 유학간다고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껴야할 때여서 내 이런 성격이 더 불편하게 여겨졌던 시기다. 그래서 강의를 들으면서 내 타고난 성격이 아니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결국은 타고난 성격이 아니라 안이함과 게으름이 문제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말로는 다 하기 힘들었던 이야기
강의를 잘 들었기에 굳이 책까지 읽을 필요가 있나 생각했다. 그래서 한참동안 읽지 않았다. 책 내용의 요점은 틀림없이 이해했다고 믿었으니까.
그러다가 리디북스에서 이 책, 콰이어트를 무료로 대여해주고 있는 것을 알게 되어 읽기 시작했다. _시끄러운 세상에서 조용히 세상을 움직이는 힘_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데,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자면 내가 처음 생각했던대로 TED 강의의 주제와 일치했다. 하지만 생각하지 못했던 점은, 20여분의 강의로는 미처 다 담을 수 없는 이야기가 생각보다 많았다는 것이다.
책을 읽어 보고 느낀 것은 TED 강의는 커튼이 살짝 걷힌 창문을 통해서 이 집의 거실을 슬쩍 들여다 본 것 같다는 것이다. 창문을 기웃거려서는 거실조차도 자세히 살펴보기 어려울뿐더러, 집에는 거실만 있는 것도 아니다. 책은 마치 현관문을 활짝 열고 집 안으로 초대해서 방 여기저기를 둘러보라고 안내해준 것과 비슷했다.
책은 기본적으로 개인적인 — 수전 케인 본인의 이야기와 본인이 직간접적으로 전해들은 사람들의 이야기 — 경험과 전문가 등을 통해서 조사한 데이터가 교차하며 펼처져 있다. 이를테면, 본인의 경험을 먼저 말하고, 단지 자신이나 책을 읽는 당신만이 아니라 꽤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것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을 통계로 알려주거나, 그러한 성격/행동의 과학적 배경을 알려주는 식이다.
1차적으로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위로가 되어 준다는 것이다. 미국은 우리나라보다도 훨씬 외향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라여서인지, 성격이 외향적이지 않다는 것에 대해서 죄의식까지 가지고 사는 사람도 꽤 많은가 보다. 그래서 이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꽤 많은 지면을 할애해서 _설득_한다.
서구권 만큼은 아니겠지만, 한국에 살면서도 내향적인 성격은 꽤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고속 성장기의 따라잡기의 영향일 수도 있고, 어쨌든 내향적인 사람은 외향적인 사람보다 행동이 덜 적극적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유가 무엇이든 나를 포함해서 아마 꽤 많은 사람들이 성격을 개조해야 한다고 믿으며 살아왔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어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
일단, 사람의 성격이 내향성과 외향성이라는 어느 극단 중의 하나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이 쪽 끝과 저 쪽 끝 사이에는 꽤 많은 스펙트럼이 존재하고, 사실 나도 내향적인 성격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저자가 묘사하는 성격은 나와 많이 다르다고 느끼기도 했다. 그러니, 성격의 두 측면이 무 자르듯이 나누어 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거 아니면 저것처럼 반대되는 두 개 중에 하나를 고르는 것도 아니다.
또한, 실제의 성격과 관계없이 자신에게 정말 중요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누구라도 그 상황에서 필요한 성격을 연기할 수 있다. 물론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는 없겠지. 뭐가 됐든 모름지기 처음이 가장 어려운 법이다. 하지만, 내 꿈을 위해서 피할 수 없다면? 내 본질을 잃어버리지만 않는다면 상황에 따라 다른 사람이 되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어차피 사람은 여러 개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간다.
아쉽게도 책을 끝까지 읽지는 못했다. 시간이 좀더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는 중에 대여 기간이 만료되어 버렸다. 책의 뒷부분은 내향적인 성격을 가진 자녀가 있을 때, 어떻게 소통하고 키워나가야할지에 대한 저자의 고민과 해답이다.
맺는 말
이 책은 자기계발서가 아니다. 이 책에 여러가지 팁이 나오긴 하지만, 팁 때문에 이 책을 읽지는 않을 것 같다. 이 책을 읽고나면 반드시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행동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아, 내 성격이 나쁘거나 문제가 있는 건 아니구나..” 정도 생각할 수 있게 되면 충분하지 않은가 싶다.
사람은 종종 쉽게 할 법한 일도 ‘주변 사람이 나는 못 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못하게 되기도 한다. 이 책을 읽고 ‘아니 그건 모르는 사람들 생각이고, 실제로 나같은 사람들 많은데, 의외로 특별한 거 뭐 없이 잘 하고 살잖아?‘라는 생각 하나 정도만 남겨가도 책 읽은 보람이 꽤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