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집 청년

2019년 11월 16일

아랫집 청년

대략 5년 전의 일이다.

짧은 유학을 나갔다가 5월의 마지막 날에 한국에 돌아왔다. 아직 집을 구하지는 못한 이유로 잠깐씩 고향에 내려가 있을 때를 제외하고, 서울에 머무를 때는 계속해서 한 친구의 집에 신세를 졌다. 그렇게 신세를 진 시간도 어느새 꽉 채운 여섯 달에 가까워 오고 있었다. 나 스스로도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고, 또 오래된 친구에게도 약간 — 부디 약간이길 바란다 — 의 불편을 끼치며 생활하고 있었다. 친구의 집은 오르막길에 있어서, 마치 3층 같은 높이의 2층이었는데, 그 아랫집에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사내 하나와 어머니가 같이 살고 있다. 그리 오래 지내보지 않더라도 그저 일, 이주 정도만 그 아랫집 창문 앞을 지나다녀 보면 금새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나도 백수생활을 좀 길게 하게 되어 지원서를 내거나 하러 나가면 점심 때 쯤이 되어서야 나가고, 또 들어오는 것도 저녁 시간이 늦어서 들어오는데, 그 앞을 오가다 보면 그 청년은 항상 티비 앞에 앉아서 게임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친구에게 듣기로도 그 아랫집 사내는 군대를 제대한지도 1~2년은 지난 것 같은데, 어디 공부를 하러 나가지도 않고 일을 알아보는 기색도 없이 꿋꿋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 어머니는 — 어쩌면 홀어머니이실지도 — 매일 나가서 폐지를 주워모아서 생활비를 버는 것 같으니, 그런 아들의 모습에 더 열불이 나지 않을까 짐작한다. 사실 가끔 지나다보면 그 아줌마가 제발 그것 좀 그만하라고 아들에게 소리지르는 것을 가끔 들을 수 있었다.

나 스스로는 회사를 알아보는 중이었고, 또 금방 일 할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자주 그 모습을 보면서 한심스럽다고 생각했다. 아마 무의식에는 나는 그래도 최소한의 노력은 한다, 나는 너보다 낫다는 그런 우월감이 있었던 것 아닐까. 생각이 그렇게까지 진행되고 보면, 사실 이 몇 달을 놀며 시간을 흘려보낸 내가 그걸 그렇게 한심하게 생각할만한 자격이 있는지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결국 내가 보는 것은 점심 쯤의 모습과 저녁 늦은 시간의 모습일 뿐이다. 그 모습이 마치 연속된 것으로 보일지라도, 그 사내가 낮에 어떤 생활을 하는지 나는 전혀 모르고 있지 않은가. 사실은 그 어머니는 그렇게 오락을 하는 것 자체가 싫은 것이고, 그 친구는 그 맘 때쯤의 짧은 시간에만 휴식을 취하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다른 시간에는 제 나름대로는 생산적인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확실히 그러한 사정들을 전혀 모른다.